퇴원한 지 벌써 반 년 가까이 지났다. 나는 아직 일주일마다 병원에 다니고 있고 약도 먹고있다. 생각해 보면 입원했던 게 잘 한 일인지 모르겠다. 정말 있었던 일인가 싶게 놀랍도록 나와 내 치료에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입원했던 시간을 그대로 삽으로 파서 들어낸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이해하는 데 좀 도움이 됐다고 ...
내일이면 이곳을 나간다.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오래 있었다. 나아졌다고 하는 것도 있고 그대로인 부분도 있고 더 심해진 증상도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긴 시간이 아닐 지도 모른다. 과연 내가 이 병원에 입원했던 ㅎ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얻어가는 게 있는지 혹은 도리어 잃고 가는 게 있을지 잘 모르겠다. 입원은 요양이나 치료 등 목적이 분명한 의료행위다....
정신병원이라면 대체로 조용하고 우울한 기운이 퍼져있으리라 생각했으나 막상 와서 보면 그렇지 않다. 정신병이 생각보다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증상도 여러가지고 우울증 뿐 아니라 양극성장애 조증 자해 자살시도 거식증 등등 비슷한 양상의 환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환자들의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나 또한 일반적으로 우울증이라고 보이는 증상보다는 어지럼증이나 불...
퇴원 일자가 미뤄졌다. 밤에 잠을 잘 못 자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 밤에 잠 자는 것 만이라도 잡고 가자며 설 전에 나가기로 했다. 아쉬움과 안도가 동시에 몰려왔다. 전화 통화를 하며 조금 울었다. 나의 어느 쪽 마음이 나를 울린 건지는 모르겠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퇴원했다. 그리고 우리 병실에는 응급실에서 올라온 사람이 새로 입원했다. 많은 사람들이 ...
잠정적인 퇴원 일자가 정해졌다. 토요일. 얼마 남지 않았다. 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지금 당장 나가도 모자랄 판에. 나는 불안하다. 나아서 혹은 호전되어서 퇴원하는 거라는 사람들의 기대가 두렵다. 이 곳에서 나눴던 같은 환자들끼리의 유대감이 아쉽다. 힘들고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난다. 그런 것들이 불안하다. 담당의 ...
간밤에는 잠을 잘 못잤다. 매일 비슷한(같지는 않다) 약을 먹는데도 어떤 날에는 잘 자고 어떤 날에는 전혀 못자기도 한다. 약물에 지배를 받는 몸인지 약물을 거부하는 몸인지 교수님도 아직 파악중이시다. 1년 넘게 먹어오던 아빌리파이가 오늘부터 빠졌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괜한 불안이 엄습했다. 정말 괜한 일이다. 9시쯤 약을 먹고 10시에 소등하는데 그 한...
교수님 회진 때 얼굴이 밝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기분이 나아졌다. 원인이 뭘까 고민했는데 잠을 그럭저럭 잘 자서인 듯 하다. 약에 취해서 잠드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중간에 때때로 깨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푹 자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어제 미처 못 마친 검사를 마저 했다. 그림보고 연상되는 걸 얘기하는 검사와 심리상담이었고,...
입원한지 일 주일이 지났다. 몇 개의 검사를 했다. 나는 앞으로 내게 어떤 스케줄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아침 일찍부터 검사지를 받았다. 임상심리검사 선생님이 다면적 인성검사라고 하는 MMPI와 BDI BAI BHS 검사지와 문장완성검사, PSS 등등 700문제는 족히 될 검사지를 가득 안겨주고 가셨다. 양은 많지만 이런 검사는 이전에도 몇 번 해 봤고 딱...
병원에서의 주말은 무의미하다. 의사 선생님이 출근을 안 하시기 때문에 회진도 없고 치료나 검사도 없다. 이런 주말을 맞이했다. 심심함 무료함의 전신을 지배한다. 책은 읽을 대로 다 읽었고 병동에서 친해진 몇몇과 퍼즐을 맞추거나 보드게임을 하고 떼어 붙이기 같은 활동을 했다. (다른 병동에서는 산책도 하고 그러겠지만 이곳은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기 때...
병을 앓고 나서 주변사람이 가장 경악했던 것 중 하나는 기억을 못하는 것이었다. 나도 물론 놀랐다. 기억을 한 스푼 떠서 버린 것처럼 통째로 날아갔다. 눈을 떠보면 나도 모르게 침대에 누워있고 눈을 떠보면 다른 장소이고, 그런 식으로. 이 현상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할 지 의사 선생님도 답을 해주지 못하셨다. 오늘은 병동...
오랜만에 잠을 그럭저럭 잤다. 꿈도 많이 꿨다. 약이 증량된 덕이다. 대신 밥맛을 잃었다. 밥이 눈 앞에 있으면 초조하고 불안하다. 나는 맛을 느끼기 전에 와구와구 먹어서 치워버린다. 하루에 한 끼 먹던 사람이 세끼를 먹으려다보니 소화시키다 하루가 다 간다. 간밤에 쌓인 꿈도 소화가 안됐는데 밥까지 뒤쫒아 오는 기분이다. 발을 드레싱하고 면담을 하는데 이번...
생각보다 일찍 검사를 했다. 엊그제 MRI를 찍은 이후로 오늘 오전에는 뇌파 검사를 했다. 검사를 하는 날은 약간 신이 난다. 병동 밖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간호선생님과 검사선생님 사이에 인수인계 같은 게 이루어진다. 나는 건네받아진다. 검사실로 가는 길에 간호선생님이 춥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시원한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 길은 내가 외래로 다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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